• 최종편집 2024-03-25(월)
  • 전체메뉴보기
 
capture-20200522-144036.png
 
[당진=로컬충남] 시인 홍신선 선생은 5년 전 서울에서 동국대학교 교수를 퇴임한 뒤 순성면 양유리 아미산 중턱의 희락당가든 옆에 집을 짓고 산다.

지난 18일 날 집에서 만난 노시인은 ‘이제 80이 3년 남았다’고 말했다.

경기도 화성이 고향인 그는 살던 마을이 수용이 돼 받은 보상금으로 이곳에 내려와 700평 땅에 주인이 됐고, 함께 이장한 선산 문중의 묘지기(?) 비슷하게 일을 맡고 있는 터였다.

“퇴직하고 노년에 서울에서 특별히 할 일도 없고, 알고 지내던 면천 분으로 해서 이곳에 오게 됐다.”

홍 선생의 마나님도 70년대를 주름잡던 ‘K읍 기행’의 노향림 시인이 반려자다.

홍 시인은 2017년엔 고향에서 주는 노작문학상(시인 홍사용을 기리는 17회 문학상이다)을 받았는데 대상작인 시가 ‘합덕장 길에서’다.

그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아침나절 읍내버스에 어김없이 장짐을 올려주곤 했다
차안으로 하루 같이 그가 올려준 짐들은
보따리 보따리 어떤 세월이었나
저자에 내다팔 채소와 곡식 등속의 낡은 보퉁이들을
외팔로 거뿐거뿐 들어 올리는
그의 또 다른 팔 없는 빈 소매는 헐렁한 6.25였다
 
그런데 근년에 발표한 노향림 시인의 시는 이렇게 감자 이야기를 썼다.
 
충남 당진의 깊은 산골로
선산이 옮겨간 뒤 수북한 잡초 속에
몇 기의 무덤이 앉아 있다.
그 발치 아래 자투리땅은 감자밭이다.
그곳에서 캐낸 감자 한 상자가
내가 사는 고층아파트까지 올라왔다.
붉은 황토가 묻은 감자알들은
임부의 배처럼 튼실했다.
속에다가 무슨 희망을 잉태하고 있는지
모두가 크고 둥글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모골이 송연해졌다.
오랜 시간 땅속 깊숙이에서만
안으로 뭉쳤을 응집력 탓이다.
 
드디어 익은 감자를 식히고 한 입 베어 먹는다.
잘 익어 혀끝에 살살 녹는다.
몇 편의 시도 이처럼 잘 익어
입에 녹는 맛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는 생각이 둥글수록 잘 익은 놈이다.

          -감자를 삶으며(중앙일보 2017. 8.1)
 
그가 사는 집 옆에 희락당가든은 손맛 좋은 곳으로 예전(군청 재직 시절)에 옻닭을 먹었던 식당이 아직도 성업 중이다.

또 홍신선 시인은 기자가 문청시절 때 학원 잡지에서 모집하던 21회 학원문학상 시부문(1976년) 심사위원으로 응모시 ‘옹춘마니’를 뽑아주기도 했다. 근황 사진은 코로나19 때문에 못 찍고, 노작 홍사용문학관 제공 사진을 썼다. 다음을 기약하며.
태그

BEST 뉴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아미산자락에 사는 ‘시인 선생님’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