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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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로컬충남] 대한민국 방울토마토 최대 주산지로 유명한 부여군 세도면 출신으로 1986년 31살의 나이로 홀홀단신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꿈많던 젊은 청년이 35년만에 전세계 68개국 141곳에 7600명의 정회원을둔 ‘세계한인무역협회’회장이 되어 750만 재외동포들의 경제 수장으로 돌아왔다.

그는 미국 유학중 보험사에 들어가 3년만에 솔로몬보험을 창업 현재 수주 총액만 1억 1000만달러에 달하는 미주한인 최대 보험사로 성장시킨 교포 사회에서 성공한 신화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편집자 주>

고향은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곳! 어려울 때 기댈수 있는 곳!
‘꼭 어머니가 계실 것 같은 따뜻함이 묻어나는 집’, 옛 생각이 나는 집이 그리운 고향

■ 먼저 젊은 청년 시절을 얘기한다면?

대전에서 보문중고를 졸업하고 경기대학교 관광경영학과를 나와 ROTC 복무후 잠시 제약회사에 다녔다.

당시 최고의 명사인 안병욱 교수님으로부터 “21세기를 살아가는 젊은 청년들은 앞으로 영어와 컴퓨터,자동차 운전이 필요하다"라는 말씀을 듣고 운전면허 시험에 도전 16번을 떨어지고 17번째 합격한 후 영어 공부를 위해 미국 유학을 생각, 비자 인터뷰를 바로 합격해 1986년 12월 16일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미국에서 대학 기숙사에서 많은 고생을 하며 공부를 했고, MBA과정을 마치며 큰 성취감을 얻은 기억이다.

1989년 1월경 아버님과 전화 통화 후 다음날 아버님께서 갑자기 연탄가스로 돌아가시면서 당시 큰 충격과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다.

■ 미국에서 정착하게 된 동기는?

아버님께서 돌아가시자 내 꿈인 무역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졸업 후 70여군데 취업을 위해 원서를 냈지만 실패의 연속이었다.

바로 영주권이 없이는 못산다는 사실을 깨닫고 생명보험사에서 취업 연락이 와 1989년부터 2년간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한 결과 영주권을 획득했다.

그 후 3년만에 1992년 솔로몬보험을 창업하여 현재까지 30여년간 보험업을 하고 있다.

■ 미국 교포 사회에서 성공한 CEO로, 또 신화적인 인물로 저명인사로 알려져 있다고 들었다.

보험업을 창업하며 대형 보험사를 상대로 상품을 거래하는 보험 도매업에 진출했고, 4개사로 확장하면서 2019년 보험 수주액이 1000억원 규모이다.

비즈니스에 성공하면서 뉴욕 사회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뉴욕지구 보험재정협회장, 직능단체협의회장,플러싱 한인회 부회장,미주 한인청소년재단 회장등을 맡아 활동하면서 교포 사회에서 신뢰를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 미국에서 사업 성공과 국내외 활동을 소개한다면?

교포들을 상대 보험이 컸다. 목표를 이룬 후 교포들을 위해 봉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강하게 갖게되면서 단체장을 출마했다.

미주 청소년단체 회장을 5년 맡았고, 공용기관에서 리더쉽을 보여주며 뉴욕 한인회장 선거에 도전 3명이 치열한 경합을 펼친 끝에 뉴욕한인회장에 당선된후 한국을 더 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 젊음의 꿈 이었던 ‘무역’의 꿈을 다시 생각하며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 옥타)’에 가입 활동을 하게 됐다.

월드옥타 활동을 하며 모국을 방문하는 기회가 잦아지며 느낀 소회는 “해외 교포들을 보다 따뜻하게 맞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향에 갔는데 맞이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다시 고향을 찾기는 힘이 든다.

그러면 우리를 맞이할수 있는 ‘홈커밍데이’등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소통을 하면서 마음을 주고 받을수 있는 기회가 1년에 단 한번이라도 잇다면 더 많은 인사가 고향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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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장님께 고향이란?

내가 가장 자랑스러울수 있는게 ‘고향’이다. 고2 때까지 세도에서 살았다. 고향은 어렵고 힘들 때 항상 기댈수 있는곳! 고향에 와서 심호흡을 하고 거기에서 새로운 활력을 주는 곳! 항상 따뜻하고 희망을 주는 곳! 하지만 너무 도시화 돼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지역에 옛 풍경을 남길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미래의 큰 자산’일 것이다. “꼭 어머니가 계실 것 같은 집! ‘내가 가고 싶은 집!’ ‘옛 생각이 나는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누구에게나 가장 그리운 집!’”이 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관광 명소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 고향에 대한 바램이 있다면?

21세기 이젠 세상은 누구나 잘 살고 있다. “물질적이지 않는 30년전의 부여로 돌아가는 부여의 마음을 품자!”라는 훈훈함, 따뜻함이 있었으면 좋겠다.

고향 이야기를 서로 나눌수 있는, 옛날 이야기를 들을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더욱 바랄게 없다. 한국에 들어오면 보통 수개월 일정으로 전국의 지자체를 꽤 다녀 보는데 모두 비슷하다.

특징이 없고 도시나 시골이나 인위적이고 획일적이고 행사도 거의 같아 보인다. 본인들만 모르는 것 같다. 나도 관광경영학을 전공했다. 부여만으로는 쉽지 않다.

2박 3일 일정으로 부여, 공주, 논산을 잇는 ‘스마트 호텔’. 아직 다른 지역에서 할 수 없는 테마가 있는 호텔. 한 곳에서 모든게 이뤄지는 복합적인 호텔이 필요하다. 먹거리의 중요성은 최우선이다. 관광객 유치는 됐으나 부여 상권으로 끌어 들여야 한다.

내 어릴적 시대는 세도에서 부여 올때면 장터 한번 보는게 꿈이었고, 차부(터미널)를 가는게 꿈 이었다. ‘음식거리’, 즉 유명한 먹거리가 새로운 미래를 열수 있다.

■ 앞으로 계획은?

한국의 젊은 인재들을 해외 진출을 위한 멘토 역할이다. 나도 유학생 신분을 거쳤다. 그러하기에 그 경험을 토대로 제대로 된 멘토가 되어 주고 싶다.

또 한인 2세대들을 위한 정체성 위한 우리의 뿌리 교육 프로그램 운영도 추진할 계획이다. 해외에 나가 있는 한인들을 위한 지원체계도 행정적으로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해외 교포들의 애로사항을 국가가 나서 이를 제도화 시켜 해결해 줘야 한다.

가장 큰 이중국적 문제를 예를 든다. 우리 월드 옥타는 모국의 훌륭한 인재와 농산물등의 수출을 돕고 세계속의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역할을 사명을 알고 활동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나의 고향 부여! 21세기 부여신문 창간 16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앞으로 우리 월드옥타에 큰 관심을 당부드리며, 지면을 통해 고향 부여의 군민들게 건강하시고 부여의 발전을 멀리 뉴욕에서 기원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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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화 세계한인무역협회 회장 "고향은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곳! 어려울때 기댈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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