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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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동문사서점에서 발행된 조선민족운동연감에 신대한동맹회 박정래 회장이 기록돼 있다.

[내포=로컬충남] 1919년 중국 북경(北京)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인 신대한동맹회 박정래 회장이 홍성 출신 독립운동가로 밝혀지면서 홍성 출신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박정래는 홍성 지역의 초기 기독교인으로 용의조선인명부에 따르면 1887년생으로 본적이 홍성군 고도면 동산리 339번지로 기록돼 있다. 1914년 간도로 도항을 했으며 1920년 북경으로 옮겼다. 그러나 박정래의 제적등본을 참조하면 홍성읍 고암리가 본적으로 돼있다. 또한 1946년에 발행된 조선민족운동연감에 수록돼 있는 항일독립운동단체 신대한동맹회 회장이 박정래로 기록돼 있는데 박정래가 박봉래의 이명이라는 것이 용의조선인명부에 담겨 있다. 이는 이상만 목사(본보 557호, ‘홍성3·1운동에 이상만 목사 있었다’)가 이명제와 함께 북경에 갔을 때 찾아갔던 박봉래가 박정래였다는 것이다.

서부면 광리감리교회 고성은 목사는 지난 8일 열린 당진 기독교 3·1운동 100주년 학술심포지움에서 ‘독립운동가 이상만 목사의 생애와 활동’의 주제발표를 통해 박정래, 박양래, 이건우 등의 홍성 출신 독립운동가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신대한동맹회는 1910년대 초 북경으로 망명한 박정래가 중심이 돼 이곳 교민들 사이에 독립운동단체 조직의 필요성이 제고되고 있음을 알고 동지를 규합해 만든 항일독립운동단체로 박정래와 최 우가 각기 정·부회장에 선임됐다. 이후 이상만 목사를 총무로 영입해 독립운동을 위한 문제들을 협의하고 중국정부와의 외교접촉과 개별공세를 취하는 한편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는 외곽단체로서의 임무를 담당했다. 이로써 신대한동맹회의 주요 활동 인물이 홍성 출신 독립운동가 두 명, 박정래와 이상만 목사가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 셈이다.

박양래는 홍성제일교회의 설립자로 박봉래의 작은 형이다. 박양래의 후손인 박완규의 증언에 의하면 박양래는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노비들을 해방시켜 줬다고 한다. 그 노비들 중 한 사람이 전남 강진에 터를 잡고 박양래는 한일병탄 직후 만주로 이주해 독립운동가가 됐다. 박병래는 독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남 강진에 거주하는 노비를 찾아갔다가 병을 얻어 객사했다고 한다.

고성은 목사는 “이 증언을 뒷받침하는 자료 발굴이 앞으로의 과제다”라며 “이상만 목사의 큰 아들인 이건우 역시 해방 이후 북한으로 간 것으로 아는데 북한으로 간 인사들에 대한 역사적 재조명과 이에 걸맞는 서훈이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옥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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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독립운동가 재조명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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