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1(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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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4000751_mezhmipe.jpg▲ 가기천 전 서산시 부시장
   
[서산=로컬충남] 모든 것이 멈춘 듯하다. 길에도 시장에도 사람은 뜸하고 밋밋한 바람만 돌아다닌다. 계절은 생동하는 봄으로 들어섰는데 분위기는 어수선하다. ‘코로나19’라는 정체 모를 바이러스가 뉴스를 온통 빨아들이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의 풍속도를 낯설게 바꿔놓고 있다. 소소하지만 평온한 일상의 소중함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학교에서도 예년 같으면 입학식을 하고 학년이 올라가 새로운 만남과 새 과정의 공부를 시작할 무렵인데 올해는 ‘개학 연기’라는 메마른 조치에 가로막혀 교문은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설렘 속에 어설픈 기운이 감돌아야 할 교정에는 적막감만 가득한데 개나리, 목련꽃이 무심한 듯 벙글고 있다.
   
이맘 때 쯤 되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 중학교에 입학하니 모든 것이 낯설었다. 초등학교 생활이 둔각이었다면 중학교는 예각으로 바뀐 듯 했다. 까까머리에 교모를 쓰고 교복을 입었다. 선생님께는 당연했고, 통학 길에 상급생을 만나면 거수경례를 해야 했다. 그런 외형적인 변화와 함께 초등학교와 달리 과목별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수업을 받는 것이 새로웠다. 첫 시간, 긴장과 호기심으로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선생님을 바라다보았다. 선생님은 흑판에 성함을 쓴 후 출석을 부르고 나서 말씀을 시작했다.
       
“음식을 만들자면 여러 가지 재료가 있어야 한다. 곰탕을 예로 들면 고기와 파, 마늘, 고춧가루, 소금이 필요하다. 모든 재료가 골고루 있어야 제대로 된 곰탕을 만들 수 있다. 이 과목도 여러 가지 재료 중의 하나다.”
      
중학교 신입생 수준에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자 곰탕을 예로 들은 것이라고 짐작하면서도 왠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그런 논리라면 다른 과목에 대한 설명도 똑같은 것일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 과목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 이유와 목적을 덧붙여 주셨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미련이 두고두고 따라왔다. 묻지 못했던 탓이다.
      
국어는 알맞은 언어를 통하여 사람들과 소통하고 자기의 생각을 짜임새 있게 표현하기 위한 것이고, 수학은 숫자와 도형을 이해하여 실생활에 활용하고 나아가 규칙적, 체계적,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을 갖게 하는 것이며, 역사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살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외국어는 외국 사람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과 그들의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며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것이라는 답을 성장하면서 터득했다.
      
예전에 이런 우스개가 있었다. 어느 날 주인이 머슴에게 “내일 일찍 장에 다녀와야겠다.”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 주인이 머슴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얼마 후 땀을 흘리며 나타나는 머슴에게 “어디 갔었느냐?”고 물었다. 머슴은 “장에 갔다 오는 길인데요”라고 했다. 장에 가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모른 채 다녀왔던 것이다. 머슴은 헛수고를 했고 주인은 원하는 일이 어긋나고 말았다.
      
조직체에서 일을 하려면 기획안을 만든다. 일반적으로 기획안은 사업목적, 방침, 추진계획, 실천요령, 조치사항 순의 틀에 맞춰 작성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추진 배경이나 기대 효과 등을 넣기도 하지만 앞의 형식에 맞추면 대체로 무난한 계획서가 된다. 여기에서 핵심은 ‘목적’이다. 목적이란, 실현하려고 하는 일이나 이루고자 하는 목표다. 달리 말하면 ‘무엇을 왜 하려고 하는가?’라고 설명할 수 있다. 무엇을 왜 하여야 하는지, 분명한 목적을 정하지 않은 사업이란 성과를 기대기 어렵다. 목적과 목표가 확실해야 최적의 추진방안을 찾아내고 최상의 결과를 얻게 된다. 구성원들에게 확실한 목표를 제시함으로써 그들의 의지와 역량을 한곳으로 모으고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목적지가 분명하지 않으면 엉뚱한 곳을 헤매게 되는 것처럼 목적이 뚜렷하지 않으면 혼선과 시행착오가 일어나고 소기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왜 배우려 하는가? 학생들에게는 가장 원초적으로 가져야 할 물음이다. 목적을 알려주고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평생교육 시대인 지금은 학생뿐 아니라 성인들도 생각해보아야 할 전제이기도 하다. 공부란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고 학교는 공부와 인성을 가르치고 습득하는 도장이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물으면 다양한 대답이 나온다. 때로는 목표 자체가 불투명하거나 목표가 추상적이고 외적 상황에 맞추어진 경우가 있다. 분명한 목적을 가져야 하고 가야할 방향을 터득하게 해주어야 하는 이유다.
      
나라에는 국정지표가, 회사에는 경영목표가 있다. 그 조직의 존재 이유와 목적달성을 위하여 함께 가야 할 목표를 설정한 것이다. 왜 이 과목을 배워야 하는가에 명쾌한 답을 다 듣지 못했던 50여 년 전으로 돌아간다. 지금의 교육현장을 잘 알지 못한 채 옛날의 경험과 기억에 의존하여 하는 소리인지는 모르겠다. 어수선한 상황이 하루 빨리 마무리되어 닫힌 교문이 열리고 교정이 시끌벅적하기를 기다린다. 그 속에서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고 열중하는 모습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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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무엇인지’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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