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1(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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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벽돌을 부채살 모양으로 촘촘히 박은 퐁네프 다리...낮선 이방인의 노스텔지어 자극
[청양=로컬충남]가을철 파리는 정말 아름답다. 화려한 경치나 청명한 날씨와 파리가 지니고 있는 다양한 볼거리 때문만이 아니라 거리 어디서나 가을 분위기를 담고 느낄 수 있는 뒹구는 플라타너스 낙엽,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를 한 잔 앞에 두고 거리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 노천카페의 사람들에게서 낭만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느강을 따라 산책을 하고 있는 연인들의 모습에서도 그 가을의 아름다움을 느껴볼 수 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진 날씨는 두툼한 스웨터를 어깨에 두르거나 허리에 묶고, 나름대로 멋을 낸 옷차림에서도 파리의 가을을 느낄 수 있다.

몽빠르나스의 묘지에 들렀을 때 생전의 화려했던 삶을 그대로 담아놓고 있는 묘지들 사이에서 안내 책자의 자세한 위치도만 없었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싸르뜨르와 시몬느 보바르의 묘, 한 귀퉁이에 볼품없이 자리잡고 있는 천재시인 보들레르의 초라한 묘에서도 쓸쓸한 가을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파리다운 가을 풍경은 세느강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 세느강으로 가면 파리의 다양한 모습들과 그들만이 지니고 있는 변화 넘치는 가을 풍경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유난히 자주 오가는 유람선들 때문에 소란스런 관광지를 찾고 있다는 느낌을 때때로 받고 있기는 하지만 잔물결이 찰랑이는 강변 길을 여유 있게 걷노라면 나도 모르게 '빠리지앤느'가 되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지금은 일 드 프랑스(파리를 중심으로 반경 100km 주변을 일컫는 말)로 퍼져나간 파리의 모태가 된 곳이 세느 강가의 작은 섬이 '시떼'이고 보면 이 시떼 섬을 중심으로 세느 강가를 따라가는 도보 여행은 파리 여행의 백미(白眉)라고 할 수 있다. 시떼섬은 교회, 경찰, 법원 등의 건물이 들어서 있는 파리 행정의 중심지인데 이곳에서 출발해서 교육의 중심지였던 라틴거리까지 가는 도보 여행을 하게되면 파리의 행정과 교육을 두루 섭렵(涉獵)하는(?) 의미 있는 여행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세느 강변을 따라가는 도보 여행의 출발은 강변 어느 곳에서 시작해도 무방하지만 비교적 찾기 쉬운 노틀담 성당 앞에서 출발해 보도록 하자. 나중에 세느 강변을 걷다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에도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는 라틴 거리가 가까이 있어 출발점으로 적당한 곳이다. 방향은 시계 반대방향이 좋겠다. 시간은 오후 조금 늦은 시간을 택하면 저물 무렵의 아름다운 세느 강을 덤으로 볼 수 있다.

노틀담 성당에서 생루이 섬으로 가는 작은 다리를 건너 세느 강 북쪽으로 가면 세느 강 도보 여행이 시작된다. 샤틀레를 거쳐 뽕네프 다리로 가는 길은 자동차들이 속도를 내어 달리고 있는 강변 도로가 있어 조금은 소란한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주변에 볼만한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고 길가에 늘어서 있는 고서적이나 음반 등을 파는 작은 노점들이 있어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요즘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40-50년 정도 지난 잡지나, 그 때의 영화 포스터 등이 많다. 그리고 유난히 책값이 비싼 프랑스이지만 이 곳에서는 조금 오래된 책을 헐값에 팔기도 한다.

샤틀레에서 시떼 섬으로 가는 제법 큰 다리는 모두 4개가 있는데 퐁네프 다리는 섬의 서쪽에 있는 다리다. 평일도 그렇지만 필자가 찾은 토요일 오후의 퐁네프 다리는 사람들로 북적댔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제법 많은 사람이 연인 사이인 듯 민망할 정도로 소리내며 키스하는 커플이 있는가 하면 분위기 넘치게 그윽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보다 부드럽게 입술을 포개는 커플도 보였다. 이런 짙은 '프렌치' 키스를 나누는 커플들이 있어 이곳이 그 유명한 사랑의 다리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새로운 다리'라는 뜻의 퐁네프는 아이러니하게도 세느강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였다. 작은 벽돌을 부채살 모양으로 촘촘히 박아 차도를 만들고 우아한 교각에 갖가지 조각을 아로새긴 퐁네프는 16세기말 30년간에 걸쳐서 완공됐다. 다리 이름과 역사가 지닌 역설은 사랑의 의미에 대한 역설이기도 했다.

퐁네프에서 강가로 내려서면 강변에 도열하여 열병(閱兵)을 기다리는 듯한 키 큰 나무들과 대화하듯 뻗어 있는 강변길에서의 산책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짧은 일정으로 파리를 찾은 사람이라면 강변 길로 내려서지 말고 루브르 궁전 담길을 따라가다 조그만 문이라도 나오면 루브르 안으로 들어가 보자. 수많은 명품들을 소장해서 유명한 루브르 박물관이 이 안에 있지만 명품을 감상하는 부담스러움 보다는 오랜 건물과 너른 광장, 그리고 유리로 만들어 진 피라미드 등이 있는 루브르 궁전 안쪽 산책이 더 여유 있고 가벼울 것이다. 무조건 많은 것을 눈에 담고, 귀에 담고, 그것도 모자라 사진에 담아오는 생산적인(?) 여행보다는 마음에 부담 없는 한 순간의 여유가 나중에 더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루브르 광장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저 멀리 콩코드 광장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오벨리스크가 눈에 들어 올 것이다. 실제로는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기 때문에 시력이 좋지 못한 사람은 잘 구별하지 못할 수도 있으나 분명히 그 곳에는 오벨리스크가 서 있다. 만약 저물 물렵 그 곳을 찾았다면 서녘으로 지는 태양의 강렬함과 그 진한 감동이 낮선 이방인의 노스텔지어를 자극하는 것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별스런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루브르 광장에서 파리의 중심축은 서북쪽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루드르 광장-뛸르리공원-콩코드 광장-엘리제 거리- 샹제리제-개선문을 거쳐 신도시인 라데팡스까지 이어지는 직선길은 파리가 어느 정도 잘 다듬어진 도시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화려함에 감탄하면서도 이런 사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민이나 농민들이 착취를 당해야 했는지, 그리고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가시 생각해 보게 한다.

루브르에서 띌르리 공원을 거쳐 콩코드 광장까지 가면 이제 우리가 떠난 세느강 도보 여행의 절반은 온 셈이다. 이제 반환점을 콩코드 광장과 국회의사당을 잇는 콩코드 다리로 삼고 이 다리를 건너자. 다리를 건너면서 오른편에는 마들랜 성당이, 왼편에는 국회의사당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제법 큰 다리인 콩코드 다리를 건너 다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누구나 가벼운 유혹에 빠질 것이다. 다리 아래로 내려가 세느강 남쪽 강변길을 산책하듯 걸을 것인가? 아니면 제방길을 따라가면 책구경도 하고 곧 다가올 오르세 박물관도 입구에서 한 번 기웃거려 볼 것인가?

필자는 욕심이 많은 터라 세느강의 낭만 넘치는 길보다는 활기찬 거리 모습이나 오래된 파리의 고건물(古建物)들을 바라보며 눈요기할 수 있는 제방 길을 택했다. 오르세 박물관, 프랑스 학술원 등 세느강 남쪽의 오래된 건물들도 보기 좋지만 강폭이 좁아 바로 건너다 보이는 루브르 궁전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오르세 박물관을 지나 로얄 다리까지 가면 서서히 강변으로 내려갈 준비를 하는 것이 좋다. 조금만 더 걸으면 세느강의 명물 말라께 강변길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만약 시간이 없어 제법 긴 세느강 도보 여행을 즐길 수 없는 여행자라도 이 말라께 강변 길만은 꼭 걸어 보길 권한다. 특히 저물 무렵, 그것도 이렇게 분위기 있는 가을 저녁이라면 정말 환상적인 산책길로 변하는데 이런 길을 그냥 두고 돌아온다면 두고두고 후회할지도 모른다.

말라께 강변 길을 걸어 퐁네프 다리 남쪽까지 오면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은 짧은 세느강 도보 여행은 막을 내린다. 오후 느지막이 도보 여행을 떠났을 경우, 그때쯤이면 거리는 어둑어둑해지고 가로등이 하나 둘 씩 켜지기 시작하면 거리는 새로운 분위기로 들썩거린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펼쳐지는 라틴구역은 먹고 마시는 곳이 지천으로 널린 곳. 특히 값싼 레스토랑이 몰려 있는 먹자골목도 있어 도보 여행으로 지친 다리도 쉬고 허기진 배를 채울 수도 있어 세느강 도보여행의 종착지로 최적인 곳이다. 요즘 이곳에서 유행하는 음식은 희랍식 샌드위치인 '케밥'. 얇게 구운 빵 위에 그릴 곁에 층층이 쌓아 구운 돼지고기를 칼로 얇게 저며 내 얹고 여기에 토마토 등 야채를 더해 둘둘 말아 먹는데 양도 제법 많고 값도 비싸지 않아(보통 10유로 정도) 훌륭한 한끼 식사가 된다.


글.사진 이인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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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기행 /센강에서의 여유로운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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