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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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29_102273_5336.jpg김창호 홍성조류탐사과학관 연구위원
   
[로컬충남] ‘사랑, 2042일의 아내 간병실록(㈜나남, 2013)’은 지난 2004년 1월 10일 난소암 진단을 받은 후 2009년 8월 6일 고분지통(아내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5년 6개월 27일. 2042일 동안 아내를 지극하게 보살핀 남편의 기나긴 간병의 대장정을 기록한 일기다. 책은 힘들게 투병하는 아내와 일심동체가 돼, 암을 극복하고자 하는 아내의 병상을 거의 매일 지키며 피눈물을 삼킨 남편의 처절한 마음의 궤적이자 금석에 새기듯 써내려간 역작이다.
 
책의 저자는 필자가 경향신문에서 기자로서, 또는 한 인간으로서, 인생의 전성기가 막 시작되려는 시기에 만나 당면한 일이나 삶에 있어서 하나의 등대처럼 길을 이끌어주고 많은 가르침을 베풀어 주신 높은 스승이자,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맑은 선배였다.
 
글쓴이 강한필 님은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배재고, 서울대를 졸업했고 경향신문 공채기자로 입사해 30년간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현장을 뛰었다. 사회부장, 외신부장, 논설위원, 편집부국장 등을 거쳐 편집국장을 두 차례 역임했다. 신문사를 떠난 뒤에는 불교방송 전무, 한화그룹 감사로도 근무했다. 아내의 발병 후 모든 사회활동을 접고 아내의 곁을 지켰으나, 끝내 그를 붙잡지 못했다. 책의 주인공인 그의 아내 정복숙 님은 오랜 난소암 투병 끝에 영원한 나라로 떠났다. 고인은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나 6·25 전쟁 때 어린 나이에 부모 형제와 함께 임진강과 한강을 건너와 대전에서 자랐다. 대전여고, 수도여자사범대학을 거쳐 충남 논산의 가톨릭계 학교인 쎈뽈(St. Paul)여고에서 음악교사로 일했다. 결혼 후에는 남편과 아이들을 위한 전업주부로만 살았다.
 
저자가 보낸 2042일은 생사를 넘나드는 5번의 대수술, 50차례에 가까운 항암치료, 3일에 한 번꼴로 드나든 병원, 100번에 이르는 입원과 퇴원, 그 사이는 희망과 절망, 기도와 절규, 분노와 회환, 고통과 슬픔, 눈물과 한숨이 가득 찬 나날이었고, 살아서 지옥을 체험한 시간들이기도 했었다고 울부짖는다.
 
일기에서 그가 간구하는 깊고 절실한 기도(祈禱)와 사랑, 찬란한 용기는 너무도 정예하고 빛난다. 그리고 우리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새로운 힐링과 명상, 통찰을 선물한다. 누구나 생노병사의 과정을 겪는다. 회자정리, 생자필멸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생사의 기로에 선 환자를 대신해 아파줄 수는 없다.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인간은 결코 없다. 부모나 아내, 자식들의 병을 차라리 자신이 안고 가고 싶다는 안타까움과 몸부림을 절실하게 느끼지만 그러지 못한다.
 
항암제에 강요당한 삭발, 수없는 주사바늘 자국과 차가운 메스에 어지럽게 난자된 몸과 흉터, 피눈물이 밴 병상,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마취와 수술, 아내의 신음과 흐느낌, 약물에 지친 아내의 애절한 모습, 먹지도 못하고 먹으면 토하는 기막힌 역류, 걸음걸이를 다시 연습해야 하는 후천성 장애, 다가오는 이별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잠 못 이루는 길고 깊은 밤. 저자는 난소암 아내의 아픔과 절망, 불행한 운명을 고스란히 자신의 것으로 이해하고 만들어갔다. 죽음 앞에서 어찌할 수 없다는 무력함 속에서도 그는 아내의 암을 최선을 다해 간병하면서 자신의 암 이상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아내의 암을 결국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으로 끝없이 자책하고 탄식하고 회한을 뿌렸다. 그래서 우리는 차라리 그가 실제 투병했다고 말하는 것도 옳다고 보인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지인들의 암 발생은 더 이상 강 건너 불이거나 남의 일이 아니다. 보건복지부의 암 통계에 따르면 국내 사망환지의 약 30%가 암으로 사망한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83년 이후 사망원인 1위를 고수하는 것이 악성 신생물로 불리는 암이다. 기대수명인 82세까지 생존할 경우 암(누적암)에 걸릴 확률은 35.3%(여성은 32%, 남성은 37.9%)로 여성은 3명 중 1명, 남성은 5명 중 2명이 암으로 고통을 받다가 사망하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특히 난소암은 각종 부인암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고(serious) 치명적인 암에 속한다. 유방암은 예후가 비교적 좋은 암에 속한다고 하나 항암치료 기간 중 머리털이 다 빠지고 먹지도 못하고 먹으면 토하는 등 증상은 대동소이하다.
 
책을 읽으며 우리는 비통하게 다시 묻는다. 우리의 사랑은 충분했던가. 우리는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있는가. 사미인곡(思美人曲)의 끝나지 않은 노래는 슬픔의 가련한 여로에 여전히 잠겨 있다. 그는 지금도 아내가 입원했던 병원의 암 병동을 처연히 바라보며, 함께 거닐었던 산책길을 홀로 서성이며, 밤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처럼 어두운 님의 침묵 앞에서 한없이 오열한다.
 
책이 간행된 2013년 6월 전에, 저자의 초고를 먼저 읽을 수 있는 배려를 영광스럽게 받았고 스스로 발문(跋文)을 쓴 필자는 그 후 2018년 아내의 유방암 투병을 뜻하지 않게 겪으면서 이 책을 수번에 걸쳐 다시 읽으며 책의 진가를 재발견하고 많은 도움을 받고 큰 힘을 얻었다. 그러나 지금 동병상련의 처지가 된 필자는 그가 아내에게 바친 위로와 동행의 10분의 1, 아니 100분의 1도 아내에게 베풀지 못했음을 한없이 부끄러워한다.
 
이 책은 이제 절판이 되어 일반 서점에서는 구하기 힘들게 되었지만, 여건이 허락한다면 <펭귄문고>처럼 페이퍼백으로 다시 만들어, 휴대하기도 쉽고 가격도 더 저렴하게 해 암 환자를 보살펴야 하는 많은 사람들이 항상 주변에 비치해 두고 자주 읽을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필자는 수많은 눈물과 벅찬 감동으로 이미 수십 번에 걸쳐 읽었으며 지금도 항상 책상 앞에 두고 수시로 들추고 있음을 눈시울을 적시며 고백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오늘도 병상에 누워 그 옆에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운명의 발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삼키는 수십만 수백만의 암 환자,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라고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진지하게 피력한다. 책은 특히 병원과 의사에 의해 암 환자가 오히려 소외되고 주변화 되는 암 병동의 문제점, 항암치료의 부작용 등을 결코 지나치지 않는다. 그의 정교하고도 숙련된 기술(記述)은 암 환자와 간병하는 가족들에게 매우 유용한 가이드 북 이상의 역할을 한다. 책은 암에 대처하는 우리들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기념비적인 이정표다.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암에 관한 기록문학으로서 이만큼 뛰어난 저작을 필자는 아직 알지 못한다. 암에 관련된 저작 중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는 등의 베스트셀러를 쓴 일본의 저명한 저술가 다치바나 다카시(1940~)의 ‘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한다’나 프랑스의 지성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가 어머니의 암 투병과 최후를 지켜보며 쓴 장편소설 ‘죽음의 춤’을 능가한다고 보인다. 그의 역량에 새삼 감사하고 경의를 표한다.
 
울지 않으면 읽을 수 없다는 많은 명문(名文)들이 존재하지만, 책의 아름다운 문장과 헌신과 고통이 가득 찬 내레이션(Narration)들은 필자에게 불멸의 서사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책은 암에 관한 하나의 고전(古典)으로 손색이 없다고 확신한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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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2042일의 아내 간병실록’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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